여행/아 바오로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임인덕 신부님

아우라지. 2009. 12. 4. 19:53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임인덕 신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서방 수도(修道) 제도의 입법자','수도생활의 사부(師父)'로 불리는 이탈리아 성 베네딕트

           (480∼547)가 쓴 수도 규칙서의 대표적 문구이다. 경북 왜관의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엘

           가면 곳곳에서 이 문구를 볼 수 있다. 이곳의 모든 사제와 수사들은 실제로 한순간도 잊지

           않고 이 문구를 새기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독일 출신의 임인덕(73·본명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신부는 영화와 비디오로 '복음'을 전하는 '미디어신부'. 성경 대신

          영화를 복음의 방편으로 삼아 기도하고 일하며 42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독특한 사제이다.


한국생활 42년은 한 편의 '로드무비´
'아시아 최대의 수도원'이라는 왜관수도원은 일반인에겐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은밀한 곳. 그중에서도 임인덕 신부가 매일매일 '기도하고 일하는' 시청각실은 웬만한 수도원 식구들조차 발길을 쉽게 들여놓을 수 없는 이색지대로 통한다.

내년 초 사제서품을 받는다는 젊은 한국인 신학생의 안내로 찾아간 수도원 한쪽, 분도출판사와 닿아 있는 시청각실은 소문대로 임 신부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영화는 딱딱한 성경보다 복음의 가치들을 훨씬 더 잘 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임 신부. 왜관수도원에서 22년간 가톨릭 분도출판사를 이끈 데 이어 베네딕도미디어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국내 영화계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어 버린 그의 한국 삶은 한 편의 로드무비나 다름없다.

20여년 전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쥐어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시청각실에서 기자를 맞은 임 신부는 실타래 같은 고난의 나날들을 덤덤한 웃음으로 하나하나 풀어냈다.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기억하시나요." 예정됐던 손님들의 방문 약속을 인터뷰 뒤로 물린 노 사제가 불쑥 던진 물음이 묵직하게 가슴을 죈다. 사제의 뜻을 이리저리 더듬어 보아도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뼘 손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도저히 참을 수 없더군요." 국내 언론들이 '시민 폭동으로 네 명의 군인과 한 명의 시민이 희생됐다.'는 왜곡으로 일관했지만 현장을 목격하고 빠져나온 광주의 한 신학생이 전하는 진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듣던 것과는 사뭇 다르고 놀라운 것이었다.

"2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됐다는 광주 현장의 증언을 밤새도록 녹음한 테이프를 서울의 성당들로 올려보내 미사 직후에 나눠 줬지요. 덕분에(?) 신부들이 모두 잡혀 들어갔고 혹독한 매질을 견디지 못한 한 신부가 내 이름을 댔지요. 출국당할 뻔했지만 아직 이곳에 살고 있네요."

출판사 이끌며 400여권 신학서적내
분도출판사 책임을 맡고 있던 1977년 '해방신학'을 번역출간했을 때의 일화도 내쳐 들려준다.

"용공성이 있다며 책을 모두 불태우라는 문화공보부의 위협이 있었어요.3000권을 찍었는데 도저히 책을 버릴 수가 없었지요. 수도원 옥상에 숨겼다가 서울의 책방으로 보냈는데 1년 만에 다 팔리고 12쇄를 찍었습니다."

1971년부터 1993년까지 분도출판사를 이끌면서 낸 책만도 400여편.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을 비롯해 교부학 시리즈 등 신학서적을 출간했으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꽃들에게 희망을'같은 스테디 셀러도 그의 손끝에서 번역되어 세상에 나왔다. 책 선정부터 번역, 편집, 교열, 제작, 표지 디자인까지 모두 혼자 해냈다.

군사정권 시절 사회정의와 관련된 책을 내려니 여간 견제와 통제가 심한게 아니었다. 천주교 교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브라질의 마틴 루터 킹이라는 돔 헬더 카마라 주교의 '정의에 목마른 소리'를 내면서부터 교회의 외면을 받았고 어쩔 수 없이 가방에 책을 싸들고 책방들을 전전해야 했다.

뉘른베르크 전기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이 땅에서 그토록 험한 길을 걷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는 정말 용감한 사람입니다. 나치에 반대하다가 살던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단 한번도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히틀러의 사진을 가리키며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선생님의 물음에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라고 말했다는 그다. 밤늦게 집으로 찾아온 교사가 "위험한 아이이니 주의를 시키라."며 아버지, 어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출판사 일을 하면서도 영화 일을 놓지 않았다. 국내 영화계에서도 그를 예술영화 보급의 산파로 인정한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연작이며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같은 예술영화를 국내에선 처음 비디오로 출시했다.

대학가며 공장에 영사기를 들고 찾아가 사회정의와 자유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을 보여 주기도 했다.

1981년부터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칠 때까지 6년간 안동 가톨릭센터에서 영화포럼을 연 것도 이 지역에선 유명한 일.

종교 초월한 영화포럼 서울로 이어져
"입소문이 번지면서 포럼엔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불교 신자, 대학생, 개신교 신자들까지 모여들었지요. 막걸리와 김치를 놓고 영화 이야기를 하느라 밤을 꼬박 지새기도 했는데…." 이 영화포럼은 나중에 서울로 이어져 한 지인이 자신의 방을 포럼 장소로 내놓아 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박완서씨도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그가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뮌헨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던 시절. 하나님의 부재와 하나님의 침묵을 담은 영화 잉마르 베리만의 '침묵'을 보고였다."신학이 가르칠 수 없는 메시지를 영화로 전할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생각이 불현듯 일었고 한국에서의 삶도 그 연장선이다.

당시는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이 컸던 때. 아시아,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가기를 원하고 있던 중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부산 출신의 한국 대학생들과 교유하면서 한국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결정적으로 한국에 오게 된 것은 1954년까지 북한 강제수용소에 수용됐다가 독일로 돌아온 한 신부를 만난 뒤였다. 그 신부로부터 전해들은 한국 문화와 풍속에 끌렸고 사제서품을 받은 이듬해 한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먼 길 떠나는 자식을 뒷발치서 하염없이 쳐다보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무렵 동생도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사로 떠났다고 한다.

한국에 42년간 살면서 성주 본당 보좌신부 6개월과 점촌 본당 주임신부 4개월을 합친 10개월이 본당 신부 소임의 전부. 나머지는 모두 출판과 영화에 매달려 산 셈이다.

지금도 주일 인근 안동 공소와 필리핀공동체에서 미사를 주례하고 강론도 하지만 큰 일은 역시 영화.5년 전부터는 DVD에 주력해 어린이·청소년들에게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심어주는 작품들에 치중하고 있다.

"라디오캐나다가 제작한 환경 애니메이션 '프레데릭 백의 선물'도 꽤 많이 팔았고 독일 아동문학가 에리히 케스트너 원작의 '하늘을 나는 교실', 이탈리아 작가 레오 리오니의 동물 우화 애니메이션 '핑크트헨과 안톤'도 반응이 괜찮은 편"이라며 웃는다.

"예수는 복잡한 이론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즐겨 썼던 쉽고 편안한 비유들을 영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한국 교회에서도 영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열려 기쁘다는 임 신부. 영화와 영성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된 그의 외길 걷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예수가 지금 시대에 있다면 분명 영화감독이 되어서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임인덕 신부는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 출생

▲ 베네딕도회 입회

1960년 뷔르츠부르크대 신학과 졸업

1965년 뮌헨대 종교심리학과 졸업, 사제서품

1966년 한국 입국

1969년 왜관수도원 기숙사 사감

1971년 분도출판사 책임

1987년 교통사고


1993년∼ 베네딕도미디어 책임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방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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